(1) 자아인지의 개념과 형성과정
자아인지란 자신의 내재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흔히 자아인지는 자기지식 또는 자아인식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일찍이 Cooley는 자아인지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자아인지가 타인이라는 사회적 거울에 비치는 모습의 반영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Cooley는 최초에 형성되는 자아를 거울상 자아라 불렀다. 여러 사람이 반영하는 단편적인 거울상들을 반복해서 지각해가는 과정 속에서 점차 자신에 대한 통합적인 개념적 표상이 형성되며, 이것이 자아인지의 기초가 된다.
자아인지가 타인으로부터 반영되는 개념적 표상에 의해 형성되고 발달된다는 종래의 자아인지발달이론가들과는 달리, 최근에 Neisser는 자아인지는 자아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 활동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직접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Neisser는 자아인지발달의 근원을 생태적 자기와 대인간 자기의 두 측면에서 찾고 있다. 생태적 자기란 아동이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효율성에 의해 형성된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지지 않고 징검다리를 잘 건너뛰는 것과 같이 깊이, 거리, 위치 지각과 운동 기능의 협응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생태적 자기지각이 형성될 것이다.
대인간 자기는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이 자신에게 주는 반응이나 정보에 대한 지각을 통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옹알이를 할 때 웃으며 얼러주는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영아들은 일찍부터 긍정적인 대인간 자기지각이 가능하게 된다. 생태적 자기지각과 대인간 자기지각은 아동의 연령 증가에 따라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발달하면서 하나의 통합적인 자아인지를 형성하게 된다.
자아인지발달과 관련하여 이해해 두어야 할 개념이 범주적 자아와 개인의 내적 자아이다. 범주적 자아란 사람과 사람 간의 차이를 구분하고 유목화하여 자아를 지각하는 개념적 틀을 뜻한다. 연령성, 신분 등은 대표적인 범주적 자아의 틀이다. '나는 남자예요'라고 자기 진술을 하는 아동은 성에 따른 범주적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아인지발달에 있어서 최근에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개인 내적 자아이다. 내적 자아란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아이다. 아동이 자신의 머릿속에 생각이 흐르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그 생각을 모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개인 내적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정서를 위장하는 것은 개인 내적 자아의 표출 양상이다. 청년기 자아발달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아동기의 개인적인 내적 자아가 타인에게 드러나는 공적 자아와 지나치게 괴리되면 바람직한 자아인지발달을 저해하게 된다.
(2) 영아기 자아인지발달
영아의 최초의 자아인지는 생후 4개월경에 영아가 공간 내 대상의 존재를 눈으로 따라가고 탐색하면서 자신이 이들 대상과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4개월 이후부터 차츰 영아는 자신이 환경 내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인적 주체로서의 인식을 갖게 되며, 이러한 인식이 자아인지발달의 주요 계기가 된다.
자아인지의 발달은 영아가 다른 대상과 구분되는 독립된 실체로서 자신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독립된 실체로서의 자기 인식은 대체로 3~6개월 사이에 영아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는 주체로서의 자기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영아는 생후 6개월경에는 초보적인 신체적 자아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영아의 자아인지는 어머니를 인지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아가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신을 인지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Lewis와 Brooks-Gunn은 9~24개월 유아의 코에 빨간 루즈를 묻혀 거울 앞에 앉히고 그 반응을 관찰하였다. 15개월 이전의 유아는 빨갛게 된 코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마치 타인인 것처럼 반응하였다. 그러나 15~24개월 사이에 변화된 코에 관심을 보이는 반응이 증가하였다. 아기들은 자기 코를 만져보는 등 얼굴에 이상한 반점이 생겨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 연구 결과는 2세경에 신체적 자아상이 형성됨으로써 자아인지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8개월경이면 영아는 자신의 사진을 알아보는 등 자기 표상을 인지할 수 있다. 18개월경에 표상이 형성되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자아인지발달이 전반적으로 인지발달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3) 유아기 자아인지발달
만 2세에서 5세 사이에 아동의 자아인지는 크게 발달한다. 2세경부터 아동들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는 아이인지 어른인지에 관한 기본적인 범주적 자아인지를 보인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사진을 보여주면 여자아이는 자신이 사진 속의 여자아이와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식별해낼 수 있다.
3세부터 언어능력이 급격히 발달함에 따라 아동들은 자신의 여러 특성에 관해서 언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러한 아동의 자기 진술은 자아인지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3~5세 아동의 자기 진술을 분석해 보면 인간관계, 자신의 신체적 특징, 소유, 기호 등 외현적 특성에 관해 자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얼굴이 까매요', '나는 동생과 싸워요', '나는 세발자전거가 있어요',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등은 이 시기 아이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자아인지의 진술 내용들이다. 특히 '나는 혼자 놀아요', '나는 아이들과 공차기해요' 등과 같이 자신의 생활습관에 대한 진술을 자주 듣게 된다. Selman의 자아인지 발달 단계에서도 보았듯이 4세 유아의 자아인지는 내재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서는 '나는 행복해', '나는 사람을 좋아해', '나는 열심히 노력해' 등과 같은 자신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진술을 듣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아동의 자아인지발달이 보다 외현적인 물리적 자아로부터 내재적인 심리적 자아로 발달해가는 과정을 밟고 있음을 보여준다. 3~5세 아동의 물리적 자아인지는 초등학교 시기에 발달하는 심리적 자아인지의 기초가 된다. 3세 6개월부터 내재적 자아인지가 나타난다. 이 시기부터 아동들은 자기의 생각에 관해 진술하기 시작하며, 숨바꼭질 놀이에서 틀린 단서를 주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거나 위장하는 초보적인 자아인지 통제 능력도 보이게 된다.
(4) 아동기 자아인지 발달
초등학교 시기 동안에 아동의 자기 진술은 점차 외적 특성들을 나열하는 데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격, 가치, 생각, 신념 등 심리적 특성들을 묘사하게 된다. '나는 노래를 못해요', '나는 엄마가 없으면 슬퍼요' 등과 같이 자신의 능력, 정서 등 제반 심리적 특성을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아동기 구체적 조작 사고의 발달과 함께 범주적 자아는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화되며, 위계적인 유목 범주에 따르게 된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에요', '나는 여자고, 내 동생은 남자예요', '우리는 아이들이에요' 등은 이 시기 아동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범주적 자아에 관한 진술이다. 6세 이전의 아동들은 개인적인 내적 자아와 외적 행동 간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8세 아동은 생각과 표현이 다를 수 있으며, 같은 감정도 사람에 따라 달리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대체로 6~8세 사이에 아동들은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공적 자아와 개인 내적 자아의 불일치를 이해하게 되며, 개인 내적 자아가 진짜 자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아동의 자아 인지 발달 양상을 검토한 연구를 보면 대체로 서구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지만 우리 아동의 고유한 특징도 찾아볼 수 있다. 6~15세 아동 479명에게 20개의 문장 기록 검사를 주고 '내가 누구인가'를 진술하게 한 연구에 의하면,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아동도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자기 지식의 영역이 다양화한다. 아동의 자아 인지를 신체적 자아, 활동적 자아, 사회적 자아, 심리적 자아로 나누었을 때, 연령이 증가할수록 구체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적 자아 인지는 감소하는 반면에 또래 집단과의 관계에 관한 사회적 자아와 생각, 신념 등 추상적이며 내재적인 심리적 자아 인지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서구의 경우 신체적 자아 인지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아동은 신체적 자아 인지가 증가하는 특이한 자아 인지 발달 경향을 보인다. 서구 아동에 비해 우리나라 아동은 타인과 비교하거나 타인과의 관계 내에서 지각되는 신체적 매력에 관한 관심이 아동기 동안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점이 특히 흥미로운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