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의 유전 및 경험적 기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인간 발달 과정에 작용하는 유전과 경험적 기제에 관한 개념적 모형을 살펴보고, 지능과 성격 발달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을 통해 이 두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유전-환경 상호작용의 개념적 모형
지능, 성격, 사회성 등 인간의 심리적 특성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유전자형이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기제는 눈의 색깔이 결정되는 생물학적 유전 기제처럼 단순하지 않다. 심리적 특성의 발달에 있어서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요인은 매우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이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특성의 발달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후천적 환경적 경험이 이들 특성을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밝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유전과 환경의 상대적인 영향력의 크기에 관한 문제는 오랫동안 심리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주제이며,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발달심리학의 이론적 접근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적 입장을 지닌 초기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여러 심리적 특성들이 후천적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환경결정론적 관점이 오늘날 발달심리학에서 더 이상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오히려 최근에는 유전적 소인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발달적 특성들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후천적 경험에 의해 인간을 무한히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특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전과 환경은 끊임없이 복잡한 형태로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의 전 발달 과정을 결정하고 있다. 유전과 환경이 어떠한 양상으로 상호작용하는가를 설명해주는 세 가지 개념적 모형을 살펴보자.
(1) 반응의 범위 모형
반응의 범위란 유전자형이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유전적 소인이 환경적 경험의 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크기를 의미한다. 반응의 범위 모형에서는 유전이 어떤 특성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환경 내에서 개인이 발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응의 범위를 이해하기 위해 신장과 체중의 예를 들어보자. 아무리 후천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가정하더라도, 유전적으로 부여받은 소인의 범위를 무한정 넘어서서 신장과 체중을 늘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키보다는 체중이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체중은 신장에 비해 보다 큰 반응의 범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응의 범위는 발달의 개인 간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동일하게 풍요한 환경 조건에서 성장하더라도 보다 큰 폭의 발달적 증가를 보이는 유전자형을 가진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같은 환경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발달 수준이 낮은 아이도 있다.
(2) 수로화 모형
수로화란 강력한 환경력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유전자형이 결과적으로 동일한 발달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표현형을 한정짓는 기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보다 강하게 수로화된 특성일수록 환경적 경험의 차이에 의해 변화될 가능성이 더 적다.
예를 들어 앉기, 서기, 걷기 등의 초기 신체운동 기능이나 옹알이와 같은 초기 언어능력들은 강하게 수로화되어 있는 특성이므로,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건 간에 비교적 일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선천적으로 귀머거리인 아이가 정상아와 같은 시기에 옹알이를 하는 것도 바로 이 특성이 강력하게 수로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지능은 후천적 물리적, 사회적 및 교육적 경험에 의해 크게 변화될 수 있는 덜 수로화된 특성을 가진다. 개인 간 수로화의 차이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모형이 아동의 회복력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가정해볼 수 있다. 동일하게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에 놓여지더라도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이 강한 아동은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발달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강한 회복력을 갖고 있는 반면, 회복력이 약한 아동은 여러 형태의 비정상적 발달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보고되어 왔다. 이러한 회복력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명백하지 않으나, 개인의 유전자형의 수로화 차이가 그 원인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3) 거래적 상호작용 모형
반응의 범위 모형이나 수로화 모형에서 보듯이, 종래의 유전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은 주로 환경이 유전자형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에 반해 거래적 상호작용 모형은 유전자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그러한 영향이 다시 유전자형의 발달로 송환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동의 기질적 특성과 초기 가정환경을 예로 들어보자. 선천적으로 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을 타고난 아이는 소극적이고 반응이 없는 기질의 아이에 비해 부모나 환경 내의 다른 요소들로부터 보다 많은 바람직한 자극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과정은 나아가 아이의 성격을 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길러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동의 유전자형의 차이는 동일한 환경도 상이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며, 이처럼 변화된 환경의 차이는 개인의 유전자형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같이 유전자형과 환경 간에 끊임없는 거래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발달에 있어서 유전과 환경이 개인차 형성에 미치는 상대적 기여도를 분리해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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